안녕하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괜찮으십니까.
뜬금없지만, 혹시 그래픽에 민감하십니까? 그래픽이라 함은, 우리 눈에 보여지는 것들 중에 뭔가... 만들어진 것. 제가 말하는 건 평면의 그래픽입니다. 옛날에는 파피루스나 돌벽, 시간 지나서 종이, 그리고 요즘은 대개 컴퓨터로 만들어지는 직사각형 속의 시각자료들. 보통 작가가 대뜸 이런 생소한 주제의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작가가 그런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겠죠. 네, 그렇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고, 그냥 적당한 인트로를 찾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앞으로 다른 글들을 읽을 때도 이런 얄팍한 술수를 통찰해보세요.
여튼, 여러분은 이런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각자 상당히 다른 느낌을 가진 이미지들이지마는, 이들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것 말이죠. 저는 이런 일러스트레이션들을 꽤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지극히 '중립적'이라서 그렇습니다.
한자로 보면 이들은 문자 그대로 삽화, 삽입되는 그림입니다. 어디에 삽입되느냐, 대부분 지금과 같이 글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단 말이죠. 다들 아실 만한 삽화를 하나 가져와 보자면, 바로 이런 게 있습니다.
이모티콘은 현재 가장 익숙하게 사용되는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물론 간단한 베리에이션도 있죠.
또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것도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즉 삽화는 그만큼 무난하고 중립적입니다. 그만큼 보편적이고 평범한 그래픽 스타일인 경우가 많죠. 그렇기에 오히려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더욱이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즘 일러스트레이션은 저같이 말 많은 글쟁이들에게 필수적인 대화 수단입니다.
하지만 일러스트레이션에게는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은 단순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스케치처럼 여러 번의 시도가 담겨 있어도 안 되고, 수채화처럼 핸드페인팅 감성이 묻어나와도 안 됩니다. 이미지 그 자체로 어떠한 목적 또는 방향성이 있어 보인다면, 그것은 보통 일러스트레이션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더라도 딱 원하는 만큼만 허용되고, 과하게 자세하거나 튀어버리는 그래픽은 환영받는 일러스트레이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러스트레이션들은 대부분 플랫하고, 벡터스러우며, 간결합니다. 과거 동화 속에 그려지던 /삽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수렴한 것이죠. 그러나 이 요소들이 오히려 일러스트레이션 제작을 어렵게 만듭니다. 최소한의 디자인 요소로 필요한 정보를 모두 담아야 한다... 아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죠. 그러나 이런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최근 세상을 휩쓸고 있습니다.
...라는 상상 속의 녀석도 그려줄 수 있는
귀여운 AI들입니다. 이제 모른 척 하려고 해도 온갖 매체가 AI를 눈에 꽂아넣는 시대가 왔죠.
그러나 솔직히, OpenAI의 DALL-E를 처음 이미지 메이커로 길들인 저는 그들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누가 조경학과 아니랄까봐, 처음 요청부터 '나무를 그려줘' 6글자를 박아넣은 모습이죠. 그런데 솔직히, 퀄리티가 참 그렇지 않습니까? 일러스트레이션. 맞긴 하죠. 그런데 아래에 뿌리는 왜 굳이 그렸고, 나무가 너무 유아틱하게 생긴 것이, 마치 생후 71개월 어린이가 만든 카드 게임에 나올 것 같은 일러스트 아닙니까.
그래서 한 번 이 친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애매모호한 그림을 그렸는지가 궁금해졌죠.
흠... 그니까, 이렇게 자세하게 말해도 이런 이미지를 뽑는다는 것인가? 대형언어모델LLM이 다른 게 큰 게 아니라 내가 작성해야 하는 프롬프트의 길이가 크다는 뜻이었나?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 친구가 생각하는 나무들이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소나무를 가장 첫 번째로 말한 걸 보면 본인이 한국인과 대화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었을까요... 반 년 전이지만 LLM 자체는 분명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미지 생성 AI는... 솔직히 불친절한 게 가장 큰 문제죠. 우리가 기대하는 능력은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지 못 합니다. 물론 우리들 스스로도 본인의 능력을 다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태반인데, 태어난 지 몇 년도 안 된 이 친구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어차피 글을 많이 쓰면 쓸수록 좋은 입장,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글을 읽지 않는 세상. 일러스트레이션, 즉 삽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의 영역에 접어들었습니다. 글만 많은 종잇장은 논문으로 충분한 나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느슨한 연재의 형태로 글을 써 두려 합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거의 모르는 입장이었지만, 어차피 알아두면 나쁜 게 전혀 없고,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이미지를 잘 뽑아내고 있기에.
하여 혹시. 혹-시나 이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말합니다. 저는 거의 모든 형태의 컨텐츠를 만들고 싶으나 시간이 없는 현대인의 뇌 한 구석에 있는 모든 창작 욕구를 응원합니다. 물론 저 또한 그러하며, 그렇기에 이는 나와 여러분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여 적기 시작하는 누군가의 시행착오입니다. 컨텐츠 팔아서 경제적 독립이느니 뭐느니 그런 건 지금은 남의 나라 이야기고, 일단 시도부터 하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위의 이미지는 제 캐릭터나 그런 건 전혀 아니고요, 그냥 미래적인 이미지 하나 뽑아 봤습니다.
오. 이렇게만 해도 삽화로는 뭔가 의미심장해 보이네요. 연출도 참 재미있죠. 아무튼, 다음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제가 AI에서 가장 처음으로 넘어서고 싶었던 벽, '화풍'에 대한 내용으로!